[IT 동아] 애플의 생태계 개방 조치, 사실은 DMA 무력화 꼼수?
2024년 01월 30일
[IT동아 권택경 기자] 애플이 유럽연합(EU) 디지털 시장법(DMA) 규제에 맞춰 대대적인 생태계 개방 조치를 발표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애플은 앞서 지난 25일(현지시각) EU에서 아이폰에 제3자 앱스토어, 제3자 결제 등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정책을 발표했다. 매출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DMA 제재를 피하기 위해 폐쇄성으로 악명 높았던 애플의 생태계를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개방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새 정책 곳곳에 독소 조항이 숨어있어 앱 개발자들 선택권을 여전히 제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애플이 새롭게 도입한 핵심 기술 수수료(Core Technology Fee)다. 핵심 기술 수수료는 연간 100만 다운로드가 넘는 앱에 100만 건을 초과하는 건부터 건당 0.5유로(약 720원)씩 부과된다.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배포되는 앱뿐만 아니라 제3자 앱스토어로 배포되는 앱에도 부과되는 수수료다. 애플은 핵심 기술 수수료가 개발자 지원을 위한 투자에 사용되는 비용이며, 99%의 앱 개발자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연간 100만 건까지는 핵심 기술 수수료 면제하는 조항이 제3자 앱스토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애플의 앱스토어가 아닌 제3자 앱스토어를 통해 앱을 배포하면 연간 다운로드 1건당 꼬박꼬박 핵심 기술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어 똑같이 EU에서 연간 200만 건 배포된 앱이라도 앱스토어를 통해 앱을 배포했을 때는 핵심 기술 수수료를 50만 유로(약 7억 2000만원)만 부담하면 되지만, 제3자 앱스토어에서는 그 두 배인 100만 유로(14억 4000만 원)를 내야 하는 것이다.
제3자 앱스토어를 이용하면 애플에는 별도의 결제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핵심 기술 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그 장점을 상쇄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애플에 비판적인 앱 개발자들은 애플이 사실상 DMA 취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을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애플과 반독점 소송을 벌여온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는 회사 차원에서 공식 논평을 내고 이번 DMA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스포티파이는 핵심 기술 수수료가 “그저 갈취일 뿐”이라며 “사용자가 앱을 다운로드 하지 않고 삭제하는 걸 잊은 경우에도 개발자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연간 100만 건 수수료 면제를 적용받더라도 신생 개발사나 무료 앱을 제공하는 개발자들에겐 여전히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IT 전문 매체 더버지는 ‘클럽하우스’나 ‘비리얼’과 같은 사례처럼 소규모 개발사 앱이 짧은 기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경우 개발사 규모에 비해 지나친 수수료를 부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구글, 애플 등 빅테크 플랫폼에 꾸준히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에픽 게임즈의 팀 스위니 CEO도 “DMA를 좌절시키려는 애플의 계획은 악의적인 규정 준수의 새로운 사례”라고 평가절하했다.
애플의 새 정책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건 이들뿐만 아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가상 사설망 서비스 업체 프로톤의 앤디 옌 CEO는 “제3자 결제와 앱 장터를 허용한 건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새 정책에 첨부된 조건은 실제 개발자가 혜택을 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제3자 앱스토어 사업자인 앱토이드의 파올로 트레젠토스 CEO도 “분명 좋은 변화지만 수수료는 여전히 높다”면서 “EU 집행위원회에 공식적인 피드백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이 개방 정책을 EU와 아이폰에서만으로 한정한 것도 사실상 이번 개방 조치를 무력화하는 효과를 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인 게 브라우저 엔진 개방 조치다.
브라우저 엔진은 인터넷 화면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는 웹브라우저의 핵심 소프트웨어 요소다. 애플은 그간 iOS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웹키트(WebKit)만 브라우저 엔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허용했지만, 이번에 웹키트 외 다른 브라우저 엔진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럽 내 아이폰에만 적용되는 정책이라, 웹브라우저 개발사가 웹키트 외 다른 브라우저 엔진을 채택하고 싶어도 EU 내 아이폰 사용자만을 위한 버전을 별도로 만들고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모질라 재단 다미아노 디몬테 대변인은 더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의 이번 조치가 “파이어폭스와 같은 독립적인 브라우저가 두 개의 분리된 브라우저를 구축하고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헀다. 모질라 재단은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를 개발한 비영리 단체다.
디몬테 대변인은 “애플의 제안은 다른 사람들이 사파리에 대한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공하는 걸 가능한 까다롭게 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유효한 선택권을 주지 못하게 한다”면서 “애플이 iOS에서의 진정한 브라우저 경쟁을 막기 위해 장벽을 만든 또 다른 사례”라고 말했다.
EU는 DMA가 본격 시행되는 3월 7일 이후 제3자 의견 등을 청취하며 애플의 조치가 충분한지 살펴본 뒤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제안한 해결책이 충분하지 않다면 주저하지 않고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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