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물리학자가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법’ 주제 강연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렵다. 미래 예측에 너무 많은 리소스를 쏟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대처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변하지 말아야할 것을 지켜내는 것이다.”
김상욱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26일 열 번째 영림원소프트랩 차세대리더포럼에서 ‘물리학자가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며, 변화에 대한 특단의 대책은 ‘창의성’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미래 예측은 어렵다 =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물자로 개발한 기술이 민간에 풀리면서 예측과는 다른 용도로 쓰인 사례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미국 듀폰이 처음에 밀폐제로 개발한 화학물질인 ‘테프론’이 나중에 테팔의 코팅된 후라이팬을 만드는데 쓰여졌다. 또 다우케미컬이 방수소재로 개발한 ‘폴리염화비닐리덴‘은 투명랩으로 응응됐다. 그리고 군사용 레이더 통신장비의 절연처리용으로 개발된 ‘폴리에틸렌’은 플라스틱으로 쓰였다.
미국이 소련의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에 대응해 최첨단 전략무기를 제조하는 DARPA라는 조직을 만들고 여기에서 개발한 네트워크인 ARPANET이 전세계인이 쓰는 인터넷으로 발전한 것도 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사례다.
미국의 SF작가인 어슐러 르 귄은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에는 세 부류가 있다고 했다. 예언가, 점쟁이, 미래학자가 그것이다. 예언가는 공짜로 예언을 하며, 점쟁이는 돈을 받으며, 미래학자는 월급을 받는다.
미래 예측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1900년 사람들은 100년 뒤 미래에는 고래가 잠수함을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예측이었다. 1900년 당시 자동차가 개발돼 있었지만 고장이 잦았으며 위험성도 있었다. 당시 중요 운송수단은 마차였다. 그래서 잠수함이 만들어지면 말 대신 뭔가 다른 것이 끌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래 말고는 다른 아이디어가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1917년에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내연기관으로 작동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선포하고 대서양의 모든 상선들을 격침시킨다. 불과 10여년 앞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예측하는 미래도 과거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 비슷할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기술 발전 역사에서 가장 급격한 혁명이 있던 시기다. 지금은 정체기이다. IT 빼고는 바뀐 게 없다. 그동안 미래에 대한 수많은 잘못된 예측이 있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인터넷을 다 이해했을까?. 인터넷은 너무나 복잡한 시스템이다. 스마트폰은 좀더 복잡한 물건이다. 스마트폰은 전화기+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아니라 제2의 뇌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줄 해악이 무엇인지 모두 다 파악하지 못했다. 유튜브가 처음 나왔을 때 사업 모델이 될까?라고 생각했지만 이 때문에 지금 방송사의 광고 수익이 반으로 준 것을 누가 예측했을까. 우리는 아직도 유튜브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페이스북이 직접 민주주의를 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지만 이제 미국은 페이스북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했다. SNS 때문에 각 나라가 분열되고 극악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SNS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미래는 대단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자신 있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심해야 한다. 드론, 메타버스, 양자컴퓨터, 3D 프린터 등의 미래는 어떠할까. 완전히 세상을 바꾼 기술은 역사적으로 전기, 증기기관, 인터넷, 컴퓨터 뿐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에 질문을 던져야” = 미래를 알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이 나왔을 때 그 미래를 제대로 예측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리학자들은 복잡한 자연 현상을 다룰 때 변화 자체를 예측하지 않는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변하지 않는 게 있는지를 생각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베조스는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5년 후나 10년 후 무엇이 변할 것인지는 묻지만, 무엇이 변화지 않을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며, “변하지 않는 것 즉 역사, 철학, 예술,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수학, 물리 등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 것”이라고 했다.
역사, 철학, 예술, 수학, 물리 등의 공통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읽고 쓰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며, 이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독서이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책을 읽을 것이다.
수학, 물리는 절대 안 바뀐다. 1차 산업혁명을 불러일으킨 증기기관, 2차 산업혁명의 전기, 3차 산업혁명의 컴퓨터나 인터넷은 모두 물리학이 한 것이다. AI가 핵심인 4차산업혁명에 이어 5차, 6차, 7차 산업혁명에서도 수학이나 물리 등은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변화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을 것들을 챙겨 보존해야 한다.
물론 생명공학이 산업혁명을 일으킬 여지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노화나 질병을 거의 정복한다거나 인공장기로 인간의 장기를 교환하는 시대가 오면 절말로 생명과학이 산업혁명을 이루겠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산업혁명은 물리학이 수학과 함께한 것이다.
◆변화에 대처하는 특단의 대책은 ‘창의성’…창의성은 ‘노가다’에서 나와 = 변화는 분명히 온다.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변화에 대처하는 특단의 대책은 무엇일까? 그 답은 ‘창의성’이다. 창의적인 생각은 어디서 올까. 영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끙끙거리며 풀어낸다.
창의성이 나오려면 첫 번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정말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 중에 하나는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얻었을 때 그것을 용기있게 논문으로 쓴 것이다. 이는 문제를 풀 때 무수히 시도해 봐야 답이 나온다는 뜻이다. 창의성의 진정한 아버지는 ‘노가다’이다. 왜 노가다에서 창의성이 나오냐면 풀리지 않는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모든 이론을 샅샅이 다 알고 수행했는데 안됐다는 확신이 서면 위험하지만 남들이 안 해본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는 게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해야할 첫 번째 일이다. 수많은 물리학 천재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노가다를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다. 노가다를 즐겁게 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장시간 반복적으로 어떤 한 가지 일에 끝까지 바닥까지 가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창의성이 나온다.
지금까지 한 얘기를 정리해 보면 예측하는 게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많은 리소스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대처 방법을 미리 짜놓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에 자꾸 예측해서 변할 거리를 찾는 것보다는 변하지 않는 것부터 챙겨야 된다. 끝으로 변화가 왔을 때 그 변화를 그냥 대응하고 대처만 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붙잡고 변하지 않도록 막아야 될 것도 있다.
고대 그리스도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말했던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고 이것들은 없어지지 않고 쪼개지지도 않고 세상 모든 걸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은 굉장히 급진적이고 위험해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것이 원자들의 움직임으로만 되어 있을 뿐 거기에 인간이 이야기하는 어떤 의미나 목적이나 심지어 선이나 악이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선악이나 목표나 의지 등은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할 뿐이며 신까지 부정했던 것이다. 또다른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을 두고 고민하다가 인간은 최대한 행복하고 쾌락을 즐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 쾌락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사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 오늘날 물리학자들이 알아낸 우주의 모습은 정확히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는 것과 똑같다. 이 세상은 원자로 되어 있다. 이 원자들의 움직임을 빼고 나머지는 다 인간이 만든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인간이 말하는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 의미는 인간이 만든 상상이다. 아무 의미없는 우주에서 거대한 의미가 생겼다. 이 얘기를 가장 잘 정리한 책은 <사피엔스>다. 이 책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을 믿는 능력,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바로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했다.
여기 1만원짜리 지폐가 있는데 원자의 눈으로 보면 색종이일 뿐이다. 사실 이것이 갖고 있는 어떤 가치는 물리적으로는 없다. 오로지 인간이 상상으로 믿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만일 반지름이 한 5kg 정도 되는 소행성이 한반도에 오늘 떨어져 한반도가 없어지면 내일부터 그 지폐는 그냥 종이조각이다. 집문서라는 것도 어떤 건물 공간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건물이 없어지면 그냥 공간이다. 집문서도 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것이다.
원자로 만들어진 것을 빼면 모든 것이 상상이다. 돈, 정의, 행복, 공정,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등. ‘~은 무엇인가’라의 제목의 책이 많은데 막상 읽고 나면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아서이다. 정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는 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믿지 않는 순간 이 사회는 붕괴한다. 의미를 왜 만들었을까? 사실 이런 능력은 인간에게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고유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5만 년 전에 구석기 시대에 생겼다는 증거들이 있다. 이걸 인지 혁명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며 모여 살았다. 그 사회는 혈연 집단이었다. 인지 혁명이 일어나자 인간은 혈연 집단을 뛰어넘는 조직을 만나면 죽이거나 도망갔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만약에 이런 상상의 체계, 인간이 만든 의미의 체계를 걷어내면 구석기 시대에 가까운 세상이 오게 될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는 지진이 일어나서 인간의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 상황을 그렸다. 아파트 사람들이 음식을 구하러 가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싸우고 죽였다. 인간이 의미를 만들어기 전에는 침팬지 집단과 똑같이 살았다.
현재 인간은 서로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모여서 평화로울 뿐만 아니라 협력해서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낸 이 상상의 체계의 특징은 대부분 권력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신석기 시대 초기에 왕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자기가 왜 일을 하지 않고도 많이 먹을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러다가 종교가 나와 하늘이 나한테 부여한 권력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의 수많은 체계도 권력과 직결돼 있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 인공지능이 직업을 뺏어갈까 봐 걱정하는데 사실 이 걱정은 역사가 깊다. 200년 전 산업혁명 때 방적기는 인간의 직업을 대체했다. 현재 인간의 직업은 20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크다. 200년 전 조선시대에 95%가 농민이었는데 지금은 10여%밖에 안된다. 80%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기계가 우리의 직업을 뺏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기계가 해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여러 측면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건지 아니면 우리를 억압하는 도구가 될건지,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은 직업 대체의 범위가 넓고 어떤 기술보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이미 100년 전에도 이 문제를 다뤘다. 100년 전에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가장 급격하게 과학 기술이 발전한 때에 직업을 뺏기는 문제를 고민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책을 썼다. 러셀은 이 책에서 “여기 100명의 사람이 일하는 공장이 있는데 내일 이 공장에 50명의 일을 해줄 수 있는 기계가 들어온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고 질문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50명이 짤리겠다는 답을 하는데, 러셀은 왜 50명을 자르느냐. 100명의 사람이 하루에 8시간씩 일을 했다면 내일부터는 100명의 사람이 4시간씩만 일하면 된다고 했다. 50명을 자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모든 기술 개발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잊으면 안 된다. 혁신적인 기술이고 효율적인 기술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 분야의 사람들이 더 불행해지거나 모두가 더 불행해지고 착취를 당한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가 온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학기술의 미래가 온다고, 인공지능의 미래가 온다고, 메타버스의 미래가 온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얘기다.
정리해 보면 예측보다는 대처가 더 중요하다. 이를테면 대처 시스템이 어떤 팬데믹 바이러스가 올 지를 찾아내면 참 좋겠지만 그것을 하려고 모든 연구력을 집중하는 것보다는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거기에 대처하는 백신을 개발하고 그 다음에 국가를 넘어서는 공조같은 시스템들을 구축하는 게 훨씬 더 올바른 방법이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 분야에서 어떤 것이 변하지 않은 중요한 가치인지 그걸 놓치면 안된다. 너무 변화만을 쫓다가는 변하지 않는 것조차 놓칠 수가 있다. 맨날 코딩만 하다가 물리, 화학, 역사, 예술을 하나도 모르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변화는 어차피 오고 그 변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기계가 들어온다고 해서 그냥 쉽게 사람을 자르는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뭐가 지금 변하지 말아야 하고 중요하고 지켜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미래는 특히 그러하다. 어떤 미래가 우리에게 좋은 미래인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합의를 내놓을 때 기업이나 정부가 거기에 맞게 더 움직일 수가 있다. 미래를 따라가는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만드는 쪽으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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