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4일 0시(이하 현지시간) 중국에 대한 보편 관세 10%를 발효했다.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3일 만이다.
중국은 즉각 반격했다. 세계 최대 검색업체인 미국의 구글에 대해선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를 시작했다. 또 텅스텐과 텔루륨, 비스무트, 몰리브덴, 인듐 관련 제품 및 기술 25종에 대한 수출통제 결정도 발표했다. 무기나 전자기기 등에 쓰이는 희소금속이다. 중국의 관영 중앙TV(CCTV)는 이에 대해 대(對)미국 반격(反制) 조치라고 전했다.
타미힐피거와 캘빈클라인 등 유명 브랜드들을 산하에 둔 패션 기업 PVH 그룹과 생명공학 업체 일루미나 등 2개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업체’ 명단에도 올렸다. PVH 그룹은 지난해 9월 ‘위구르족 강제 노동’ 의혹을 이유로 신장자치구산 면화 사용을 거부했었다.
중국이 미국에 강하게 반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다수 외신은 중국의 이러한 보복 조치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바라봤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외신은 중국이 미국산 수입 비중이 크지 않은 원유와 LNG 등을 겨냥했다는 점, 2010년부터 검색 및 인터넷 서비스를 중국 내에서 제공하지 않는 구글을 타깃 삼았다는 점을 등을 언급하며 ‘협상 카드’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달리 멕시코와 캐나다는 트럼프 요구에 굴복했다. 25% 보편관세 부과 한 달 유예를 받고 미국과의 국경 강화에 돈과 인력을 투입키로 했다. 미국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외교로 전환했음을 전세계에 공표한 것이다.
멕시코는 멕시코-미국 국경에 1만명의 군병력을 즉시 보내기로 했다. 캐나다도 캐나다-미국 국경에 인력 1만명을 배치하고 13억달러를 투입키로 했다. 캐나다는 이에 더해 펜타닐 문제를 전담하는 ‘차르’를 임명하고, 마약 카르텔을 테러단체로 지정키로 했다.
국경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멕시코,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밝힌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을 통해 미국에 펜타닐과 같은 마약류와 불법입국자 등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이 과정에서 관세를 무기로 국경 강화를 요구했었다. 중국에 대해선 펜타닐과 불법입국자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었다.
EU는 비공식 회원국 정상회의를 갖고 미국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지체 없이 대응에 나서겠다고 결의했다. 다만 미국이 요구한 방위비 증액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기준 대(對)미국 무역흑자국 6위이자,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을 요구받는 우리나라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적 보호 무역주의 기조도 재확인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은 사실상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갈취당해 왔다. 거의 모든 국가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라는 무기와 힘의 차이를 가지고 압박하는 트럼프식 외교가 기존 미국의 외교 방식과 달리 상대를 가리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결정하거나 언급한 멕시코와 캐나다, EU는 모두 미국의 핵심 우방국이다.
또 정상 간의 ‘톱다운’ 형식으로 주요 외교 결정이 이뤄지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 유예는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하고 결정한 일이다.
비상계엄과 탄핵사태에 따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우리나라로서는 대응책을 고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과 여전히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17년에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이 1월 20일에 취임해 막 1기 집권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과 1월 30일 통화한 것과 비교해도 늦다.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우리나라가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관세 표적이 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대응책을 제시할 정상 간 외교채널이 부재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오는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일본에 대한 관세 확대를 피하기 위해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의 조차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